구르의경제

셸 실적의 진실_변동성 트레이딩, 호르무즈 해협, 에너지 안보

구르만의 뉴스 2026. 5. 7. 23:30
반응형

전쟁이 나면 기업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셸(Shell)이 올해 1분기에 발표한 순이익을 보고 그 믿음이 완전히 흔들렸습니다. 중동에서 포성이 울릴수록 특정 기업의 수익 곡선은 오히려 가파르게 올라가는 구조, 그 냉정한 현실을 수치로 직접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변동성 트레이딩, 혼란이 수익이 되는 구조

일반적으로 기업은 시장이 안정될 때 돈을 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셸의 1분기 실적을 뜯어보면서 그 공식이 에너지 메이저(energy major)에게는 완전히 다르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에너지 메이저란 전 세계 석유와 가스 생산·유통·판매를 동시에 장악한 초대형 복합 에너지 기업을 가리킵니다.

 

셸이 이번에 수익을 극대화한 핵심 엔진은 트레이딩 부문이었습니다. 전쟁으로 공급망이 흔들리고 유가가 급등락하자, 이 부문이 막대한 이익을 끌어냈습니다. 여기서 변동성 트레이딩(volatility trading)이란 가격이 오르내리는 폭 자체를 수익의 원천으로 활용하는 전략입니다. 쉽게 말해 가격이 쌀 때 사서 비쌀 때 파는 것을 넘어, 금융 파생상품과 헤지(hedge) 전략을 정교하게 설계해 시장 혼란을 수익 기회로 치환하는 방식입니다. 헤지란 한쪽 포지션의 손실을 다른 포지션의 이익으로 상쇄하는 위험 관리 기법입니다.

 

제가 경험상 느낀 것은, 이 구조가 단순히 "운 좋게 유가가 올랐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위기가 클수록, 예측 불가능성이 높을수록 이들이 활용할 수 있는 수익 창출의 경우의 수가 넓어집니다. 이것이 오늘날 자본주의가 생산보다 위험의 관리와 이용에 더 특화되어 있다는 증거처럼 보였습니다.

이번 실적에서 주목할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트레이딩 부문이 실적 개선의 핵심 동력으로 작동
  • 중동 지정학적 불안이 공급망 변동성을 높여 트레이딩 수익 극대화
  • 카타르 대형 가스 시설 '펄(Pearl)' 파손으로 생산 차질 발생, 복구까지 약 1년 소요 예상
  • 순부채 증가 및 자사주 매입 규모 축소 등 방어적 재무 기조 병행

호르무즈 해협, 파란 바다 위의 시한폭탄

저는 수년 전 중동 출장에서 호르무즈 해협 인근 해상을 처음 직접 목격했습니다. 파란 바다 위로 점처럼 떠 있는 수십 척의 유조선을 보며 저도 모르게 숨이 막혔습니다. 저 좁은 물길 하나가 막히는 순간, 한국의 공장이 멈추고 동네 주유소의 숫자가 바뀐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피부로 느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은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길목입니다. 이 해협은 이란과 오만 사이에 있는 폭 33~96km의 좁은 수로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의 가장 취약한 병목 지점으로 꼽힙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이 해협이 봉쇄될 경우 단기간 내에 대체 공급로를 확보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분석됩니다(출처: 국제에너지기구(IEA).

 

셸의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카타르 시설의 재가동 조건으로 "해협을 통과할 수 있다는 전제"를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이는 뒤집어 읽으면 그 전제가 무너지는 순간 어떤 트레이딩 기술도, 어떤 헤지 전략도 근본적인 공급 마비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들 스스로 인정한 것입니다. 현지에서 만났던 물류 관계자들이 분쟁의 조짐만 보여도 유가보다 '안전'과 '생존'을 먼저 이야기했던 이유를 이제는 더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에너지 기업은 어떤 상황에서도 공급을 유지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가 직접 현지에서 목격한 현실은 달랐습니다. 분쟁의 불씨가 조금만 커져도 현장 인력과 물류 계획이 즉각 재편되었고, 거대 자본의 결정은 철저히 리스크 계산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에너지 안보, 캐나다 셰일로의 대이동이 의미하는 것

셸이 캐나다의 셰일(shale) 업체를 10년 만에 최대 규모로 인수한 것은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닙니다. 셰일이란 땅속 퇴적암 층에 갇혀 있는 원유나 가스를 수압파쇄법(hydraulic fracturing)으로 추출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기존의 전통적 유전보다 개발 비용이 높지만, 지정학적으로 안정된 북미 지역에 매장되어 있다는 것이 최대 장점입니다.

 

셸의 이 결정은 에너지 지형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불안정한 중동과 유럽의 지정학적 리스크(geopolitical risk)에서 벗어나 상대적으로 예측 가능한 북미 자원을 선점하려는 전략입니다. 지정학적 리스크란 특정 지역의 정치·군사적 불안이 경제 활동과 투자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뜻합니다. 저는 이 행보를 보면서, 거대 자본도 물리적 충돌 앞에서는 결국 발을 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중동 출장 당시 급히 일정을 변경하며 느꼈던 막막함이, 바로 이 냉정한 자본의 논리와 정확히 맞닿아 있었습니다.

 

에너지 자립도가 낮은 한국의 입장에서 이 흐름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의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90% 이상에 달하며, 특히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습니다(출처: 한국에너지공단). 셸 같은 글로벌 기업이 중동 비중을 줄이고 북미로 이동하면, 한국이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는 공급 구조 자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배당금을 올려 주주를 달래면서 동시에 지역 다변화를 서두르는 이들의 행보는, 표면의 성공 신화 뒤에 깊은 불안이 깔려 있음을 방증합니다.

재난 자본주의, 누군가의 고통이 누군가의 수익이 되는 현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트레이딩 수익이 이 정도로 클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수익의 구조가 너무나 냉정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재난 자본주의(disaster capitalism)란 전쟁, 자연재해, 금융위기 같은 대규모 혼란을 틈타 특정 자본이 급격히 이익을 확대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경제학자 나오미 클라인이 체계화한 개념으로, 위기가 오히려 자본 재편의 기회로 활용된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설명합니다.

 

셸의 이번 실적이 바로 그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있고, 치솟는 에너지 비용에 지갑을 닫는 서민들이 있는 반면, 그 혼란을 수익으로 전환하는 거대 자본의 움직임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7조 원에 가까운 순이익은 결국 전 세계 소비자들이 감당한 고물가와 에너지 비용 상승의 총합과 분리해서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들이 위험 관리 능력을 갖추고 효율적으로 자원을 배분한다는 점에서 시장의 논리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안전한 운송이 보장될 때만 가동하겠다'는 태도는, 에너지 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책임보다 철저한 각자도생의 논리를 따르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위기의 근원지에서 빠져나와 안전한 곳으로 거점을 옮기는 속도가 빠를수록, 에너지 취약국들이 그 공백을 감당해야 하는 부담은 더 커집니다.

에너지 전환(energy transition), 즉 화석연료 중심의 공급 구조에서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이동하는 과정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이 불균형한 구조는 반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그 반복의 비용을 가장 크게 치르는 쪽은 언제나 에너지 자립 능력이 없는 나라들입니다.

 

셸의 실적은 성공 신화가 아니라 위기 속에서 경로를 수정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생존의 기록입니다. 이 글이 단순히 기업 실적 분석에 머물지 않았으면 합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높아질 때마다 흔들리는 우리의 에너지 안보를 직시하고, 공급망 다변화와 에너지 자립을 향한 독자적인 경로를 확보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금융 조언이 아닙니다.

 

구르만의 뉴스 다음 시간에!


참고: https://www.g-enews.com/article/Global-Biz/2026/05/2026050719350853199a1f309431_1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