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중동 뉴스가 나올 때마다 "또 시작이네" 하고 스크롤을 내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주유소 앱을 켰다가 리터당 가격을 보고 멈칫했습니다. 트럼프가 SNS에 올린 글 한 줄이 제 기름값을 건드리고 있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피부로 느꼈습니다. 이란의 종전 제안이 거절되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이어지면서 브렌트유가 배럴당 99달러를 넘어섰고, 미국 증시 선물은 일제히 흔들렸습니다.
트럼프의 거절 한 마디, 시장이 읽어낸 것
일반적으로 전쟁보다 협상이 시작될 때 시장이 더 요동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번은 반대였습니다. 협상이 깨지는 순간의 충격이 훨씬 컸습니다. 기대감이 먼저 시장에 반영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란의 종전 제안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라고 일축했습니다. 같은 날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란 핵 문제 등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라고 발언한 것과 맥락이 이어집니다. 시장은 이 두 발언을 조합해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는 신호로 읽었습니다.
결과는 즉각적이었습니다. 다우존스 선물이 0.26%, S&P 500 선물이 0.3% 이상 하락하며 약세를 보였습니다. 여기서 선물(Futures)이란 실제 거래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가격을 정해두고 거래하는 계약으로, 다음 날 증시 흐름을 미리 가늠하는
지표로 쓰입니다. 선물이 하락한다는 것은 투자자들이 다음 날 장을 어둡게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반면 비트코인은 8만 2,000달러를 돌파하며 지난 1월 이후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제가 처음 이 수치를 봤을 때는 의아했습니다.
시장이 불안한데 왜 비트코인은 오를까 싶었거든요. 알고 보니 이것이 디커플링(Decoupling) 현상입니다. 디커플링이란 원래
함께 움직이던 자산 간의 연동이 끊어지는 현상으로, 전통 시장이 흔들릴수록 일부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을 대안 자산으로 몰리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지금 주식 시장 내부에서도 균열이 있습니다. 시타델 증권의 스콧 루브너 분석에 따르면 최근 30일 동안 S&P 500 종목 중 지수 수익률을 상회한 종목은 단 22%에 불과합니다. 이는 30년 만의 최저 수준입니다(출처: MarketWatch). 저는 이 수치가 꽤 무서웠습니다. 지수는 오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내 포트폴리오에 담긴 종목들은 제자리이거나 뒷걸음질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입니다.
이번 주 시장을 움직일 핵심 변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 인플레이션 방향을 가늠하는 지표
- 시스코·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실적 발표: 기술주 랠리 지속 여부 확인
-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14일~): 글로벌 무역 질서 재편의 시험대
- 파월 연준 의장 임기 종료(15일): 통화 정책 연속성 불확실성
유가 100달러 시대, 준비된 자만 웃는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브렌트유는 이날 하루에만 4% 이상 급등해 배럴당 99달러를 넘었고, WTI(서부텍사스산원유) 선물도 3.7% 이상 올랐습니다. WTI란 미국 텍사스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기준으로 한 국제 유가 지표로, 브렌트유와 함께 전 세계 원유 가격의 기준점 역할을 합니다. 두 지표가 동시에 급등한다는 것은 공급 차질이 일시적이 아님을 시장이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입장에서 이 숫자는 단순한 뉴스가 아닙니다. 제가 며칠 전 체감한 것처럼, 배럴당 가격이 오르면 수개월 안에 주유소 가격표에 그대로 반영됩니다. 원유 수입 비용이 증가하면 기업들의 원가 부담이 높아지고, 이는 소비자 물가로 전가됩니다. 이른바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Cost-push Inflation)입니다.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이란 원자재나 에너지 비용 상승이 생산 원가를 끌어올려 물가 전체가 오르는 현상으로, 수요가 아닌 공급 측 충격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정책 대응이 더 어렵습니다.
이 위기 속에서 사우디 아람코는 1분기에만 325억 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전년 대비 25% 급증한 수치입니다. 아람코가 단순히 고유가 덕을 본 것이 아니라, 미리 구축해 둔 사우디 본토 횡단 파이프라인으로 호르무즈 봉쇄를 우회해 수출을 이어갔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제가 이 대목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이 '우회 경로'입니다. 위기가 왔을 때 다른 길을 이미 만들어 두었다는 것이 결과를 완전히 갈랐습니다.
월가에서는 이 상황을 'NACHO 거래'라는 신조어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NACHO란 'No Access to Hormuz Channel Open'의 약자로,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고유가·고물가 환경이 장기화된다는 시나리오를 시장의 새로운 상수로 받아들이는 투자 접근법입니다. 일반적으로 지정학적 리스크는 일시적 충격으로 끝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생각에는 이번엔 다릅니다. 봉쇄가 2월부터 이어지고 있고, 협상까지 결렬된 지금은 NACHO 거래를 일시적 현상으로만 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 모든 변수들이 한꺼번에 몰린 이번 주가 '슈퍼 위크'라 불리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CPI 발표, 파월 의장 퇴임, 미·중 정상회담이 동시에 쏟아지면서 어느 하나의 결과가 나머지 변수들과 맞물려 증폭될 수 있습니다.
이번 상황을 보며 제가 내린 결론은 하나입니다. 지금 시장에서 뉴스를 단순히 소비하는 것과, 그 뉴스가 내 자산에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추적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행위입니다. NACHO 거래가 시장의 새로운 상수가 되고 있다면, 저처럼 에너지 비용에 민감한 가계나 포트폴리오를 가진 분들은 에너지 섹터 비중이나 원자재 헤지 수단을 다시 점검해 볼 시점입니다.
아람코가 파이프라인을 미리 깔아 두었듯이, 우리도 어떤 우회로를 준비할 수 있는지 조용히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참고: https://www.g-enews.com/article/Global-Biz/2026/05/202605111052361988e250e8e188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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