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식시장이 80일 동안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저는 몰랐습니다. 몇 달 전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다 전광판 숫자를 보고 멈칫했을 때만 해도, 이란 증시와 제 기름값이 같은 선 위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들여다보니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이야기였습니다.
전쟁이 시장을 멈춘 80일, 무슨 일이 있었나
일반적으로 주식시장은 어떤 상황에서도 열려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금융위기 때도, 코로나 팬데믹 때도 시장은 폭락하면서도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이란은 달랐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이 시작된 직후 정부는 테헤란 증권거래소 거래를 전면 중단했고, 그 상태가 80일이나 이어졌습니다.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패닉 셀링(Panic Selling)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여기서 패닉 셀링이란 공포에 질린 투자자들이 가격 수준과 무관하게 한꺼번에 보유 주식을 내던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한 명이 팔면 옆 사람도 팔고, 그러면 또 다른 사람이 따라 파는 연쇄 반응입니다. 제가 코로나 초기에 주식 앱을 열었을 때 느꼈던 그 공포, 그게 극단까지 간 상황이라고 보면 됩니다.
80일 만에 다시 문을 연 시장의 반응은 예상과 조금 달랐습니다. 개장 직후 매도 물량이 쏟아진 건 맞습니다. 그런데 장 마감 무렵 이란 대표 주가지수인 TEDPIX(테드픽스)가 소폭 상승으로 마감됐습니다. TEDPIX란 테헤란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주요 종목들의 시가총액 가중 평균으로 산출하는 이란 대표 주가지수로, 한국의 코스피(KOSPI)에 해당하는 지표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숫자를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정유, 석유화학, 기초금속 등 이란 경제의 핵심 종목 상당수가 여전히 거래 중단 상태였고, 가격제한폭까지 적용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시장이 건강하게 버텨낸 게 아니라, 충격을 억지로 누른 상태에서 나온 숫자였습니다.
이란 증시 구조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 서방 금융 제재로 외국인 투자 참여가 사실상 차단되어 있음
- 시장 전체가 자국 개인·기관 투자자 자금으로만 운용됨
- 글로벌 자금 유입으로 완충되는 구조가 없어 투자 심리 변동성이 극단적으로 나타남
경제가 나빠질수록 증시가 오르는 역설, 그 핵심은 인플레이션
일반적으로 주가는 경제가 좋아야 오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기업이 돈을 잘 벌고, 성장 전망이 밝아야 투자자들이 몰린다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란 경제를 들여다보면서 가장 당황했던 지점이 바로 여기였습니다. 이란에서는 경제가 무너질수록 오히려 증시에 돈이 몰리는 현상이 반복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핵심 원인은 하이퍼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입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이란 물가 상승률이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솟아 화폐 가치가 급속도로 붕괴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란의 공식 물가상승률은 연 50% 수준입니다. 이 수치도 실제 체감 물가보다 낮다는 이야기가 현지에서 계속 나옵니다.
이 상황이 어떤 의미인지, 저는 우리나라 '벼락거지' 시절을 떠올리면 조금 이해가 됩니다. 집값이 오를 때 가만히 예금만 했던 사람이 자산 격차에서 뒤처진 그 감각, 이란에서는 그게 훨씬 빠른 속도로, 훨씬 극단적으로 매일 반복되는 겁니다. 현금을 들고만 있으면 몇 달 만에 구매력이 사라집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금, 달러, 부동산, 주식 같은 인플레이션 헤지(Inflation Hedge) 자산으로 도망칩니다. 인플레이션 헤지란 물가 상승에도 자산 가치를 유지하거나 함께 오르는 자산을 통해 구매력 손실을 방어하는 전략을 뜻합니다.
실제로 TEDPIX는 올해 초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런 상황에서 "지수가 올랐다 = 경제가 좋다"는 해석은 완전히 틀립니다. 기업 실적 개선이 아니라, 현금 가치 붕괴 공포가 만들어낸 유동성 랠리에 가까웠습니다. 오히려 그 뒤에 반정부 시위, 강경 진압, 미국·이스라엘과의 충돌 우려가 겹치면서 투자 심리는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결국 거래 중단이라는 초유의 상황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란 전쟁 리스크가 한국 주유소 가격표와 연결되는 이유
솔직히 처음에는 저도 "이란 이야기가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에너지 수입 구조를 확인하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한국은 에너지 소비의 상당 부분을 수입 원유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 원유의 주요 이동 경로가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이란 이란과 아랍에미리트 사이에 위치한 좁은 해협으로, 전 세계 원유 해상 운송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이 길이 불안정해지면 국제 유가가 오릅니다. 유가가 오르면 국내 정유사 원가가 오르고, 정유사 원가가 오르면 소비자 기름값이 오릅니다. 그리고 기름값 상승은 물류비, 항공권, 난방비, 각종 제품 가격까지 순차적으로 자극합니다. 제가 주유소 전광판 앞에서 멈칫했던 그 순간이, 이란 전쟁 리스크와 실제로 연결된 장면이었던 겁니다.
더 복잡한 건 지금 이란이 처한 구조적 압박입니다. 전쟁 장기화 가능성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해상 봉쇄와 제재 강화는 이란의 원유 수출 경로를 흔들고 있습니다. 이란 경제에서 석유화학 및 에너지 산업은 사실상 유일한 외화 수입 기반입니다. 그런데 그 핵심 산업의 관련 기업들이 아직 정상 거래조차 못 하고 있다는 건, 피해 규모와 기업 가치 산정 자체가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신호로도 읽힙니다.
역설적으로 경제 압박이 심해질수록 이란 국민들이 다시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증시를 찾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지수가 오른다고 경제가 좋아진 게 아니고, 내린다고 단순히 기업 문제만도 아닌 시장이 된 것입니다. 전쟁, 제재, 통화 붕괴, 정치 불안이 동시에 반영되는 중동 지정학 리스크의 집약판이라는 표현이 틀리지 않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전문가 상담과 본인의 판단을 바탕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이란 증시는 일단 문을 다시 열었지만, 진짜 시험대는 지금부터입니다. 전쟁 불안이 다시 커지면 투자 심리는 언제든 폭발할 수 있고, 정부의 인위적 시장 통제가 반복될 가능성도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이 뉴스를 그냥 흘려보내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중동 긴장이 고조된다는 뉴스를 접할 때, 가끔 주유소 전광판 숫자와 함께 떠올려보시길 권합니다.
구르만의 뉴스 다음 시간에!
참고: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6087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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